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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ustry (반도체 산업)

[산업 분석] 특허 괴물의 표적이 된 한국. NPE 공세와 K반도체의 딜레마

by 온semi로 2026. 3. 22.

1. 들어가며 : 기술 강국의 그늘

삼성전자는 최근 3년 연속 미국 내 특허 출원 건수 1위를 기록했습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통신 기술까지 전 방위적으로 특허를 쌓아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특허를 가장 많이 출원하는 기업이 특허 소송을 가장 많이 당하는 기업이 되고 있습니다.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글로벌 영향력이 커질수록, NPE(Non-Practicing Entity), 즉 특허 괴물들의 표적이 되는 빈도도 함께 높아지고 있습니다. AI 반도체 호황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이름값이 전 세계에 각인되는 사이, 그 이름을 노리는 소송꾼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2. NPE란 무엇인가?

본론에 앞서 NPE가 무엇인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NPE는 특허를 직접 사업에 활용하지 않고, 특허권 행사 자체를 비즈니스 모델로 삼는 기업입니다. 일명 특허 괴물(Patent Troll) 이라고도 불립니다. 이들의 사업 구조는 단순합니다.

  1. 개인 발명가, 파산 기업, 또는 거대 기업의 특허 포트폴리오 일부를 저가에 매입
  2. 해당 특허와 관련된 기술을 사용하는 기업을 찾아 소송 제기
  3. 소송 비용 부담과 패소 리스크를 이용해 합의금 또는 배상금 수취


이들이 자주 선택하는 무대가 미국 텍사스주 동부 연방법원입니다. 이 법원은 원고에게 유리한 판례가 많기로 유명해 NPE들이 즐겨 찾는 법정입니다. 실제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상대로 한 대형 소송 대부분이 이곳에서 진행됐습니다.

미국에서 한국 기업을 상대로 제기된 특허소송 중 NPE가 제소한 비율은 최근 수년간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2022년에는 84.6%까지 치솟았습니다.

 

3. 삼성전자 : 6300억원 배상 평결

가장 최근의 대형 사건은 2025년 10월에 나온 판결입니다. 아마 뉴스를 통해 접하신 분들도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미국 텍사스주 동부 연방법원 배심원단은 삼성전자가 Collision Communications의 4G·5G·Wi-Fi 통신 표준 기술 특허 4개를 고의로 침해했다며 4억 4,550만 달러(약 6,381억원) 를 배상하라고 평결했습니다. 2023년 콜리전 커뮤니케이션스가 소송을 제기한 지 약 2년 만의 결과였습니다.

삼성전자는 특허 침해 혐의를 부인하며 항소를 예고했습니다. 이번 평결은 1심 배심원 평결이므로 최종 판결과 항소 절차가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만이 아닙니다. 삼성전자는 이미 Netlist와의 소송에서도 2023년과 2024년 두 차례에 걸쳐 총 4억 2,115만 달러(약 6,300억원) 의 배상 판결을 받은 바 있습니다. 넷리스트는 LG반도체 출신 홍춘기 대표가 설립한 특허관리법인으로, 메모리 관련 특허를 집중적으로 보유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현재 HBM, OLED 관련 분야에서도 NPE와 소송을 진행 중입니다.

 

4. SK하이닉스 : 연달아 두 건의 피소

SK하이닉스도 상황은 다르지 않습니다.

① AMT (Advanced Memory Technologies)

2025년 1월, 중국계 NPE인 AMT가 SK하이닉스를 상대로 텍사스 동부 연방지방법원에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했습니다. AMT는 메모리 관련 특허를 집중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소송 진행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② 모노리식3D (Monolithic 3D)

2025년 11월에는 미국계 NPE Monolithic 3D가 SK하이닉스에 HBM 및 3D 낸드플래시 관련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Monolithic 3D는 3차원 반도체 적층 기술 관련 특허를 다수 보유한 NPE로, 삼성전자에도 유사한 소송을 제기한 바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모노리식3D와 관련된 기존 소송에서는 SK하이닉스의 특허 침해가 없다는 결론이 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소송의 승패와 관계없이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5. 왜 한국이 표적인가?

NPE들이 한국 기업을 집중 공략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시장 영향력의 확대 :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글로벌 메모리 시장의 약 70% 이상을 차지합니다. 영향력이 클수록 배상금 규모도 커지고, 협상 타결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 AI 호황으로 인한 기업가치 상승 : HBM 수요 폭증으로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매출과 이익이 급증하면서, 배상금 청구액의 기준이 되는 피해 규모 산정도 커졌습니다.
  • 특허 출원 1위의 역설 : 기술 영역이 넓을수록 NPE가 공략할 수 있는 특허 접점도 많아집니다. 통신, 메모리, 디스플레이 등 전방위로 특허를 쌓는 삼성전자의 전략이 역으로 소송 빌미를 제공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 미국 법원의 구조적 특성 : 배심원제를 채택하는 미국 법원, 특히 텍사스 동부 법원은 기술적 세부사항보다 직관적인 피해 논리에 반응하는 경향이 있어 NPE에게 유리한 환경입니다.

 

6. 기업의 실질적 피해 : 돈만의 문제가 아니다

 

NPE 소송이 기업에 미치는 피해는 배상금에 그치지 않습니다.

  • 소송 대응 비용 : 미국 대형 특허 소송 하나를 방어하는 데 드는 법무 비용은 통상 수백억원 수준입니다. 승소해도 이 비용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 핵심 인력 투입 : 소송 과정에서 기술 전문가들이 법적 대응에 투입되어야 합니다. R&D에 써야 할 엔지니어의 시간이 소송 문서 작성과 법정 증언 준비에 소모됩니다.
  • 전략적 위축 : 소송 리스크를 의식한 나머지 특정 기술 영역에서의 적극적인 개발을 자제하게 될 수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기술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는 부분입니다.
  • 협상력 저하 : 소송이 장기화될 경우, 합의금을 지불하고 마무리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유리한 상황이 만들어집니다. 이것이 NPE들이 노리는 구조입니다.

 

7. 한국 기업들의 대응 전략

 

  1. 선제적 특허 출원 강화
    삼성전자가 미국 특허 출원 3년 연속 1위를 기록한 것 자체가 일종의 방어 전략입니다. 광범위한 특허 포트폴리오를 쌓아두면, 소송을 당했을 때 상대방 특허와 교차 라이선스 협상을 할 수 있는 카드가 생깁니다.

  2. 특허 전담 조직 강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IP(지식재산) 전담 조직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소송 대응뿐만 아니라 잠재적 리스크를 사전에 탐지하는 역할입니다.

  3. 정부 차원의 지원
    특허청은 NPE 소송 관련 위험 경보 발령과 대응 지원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다만 정부 지원의 실효성이 실제 소송 비용과 리스크를 충분히 커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8.  Insight : 기술 강자가 되는 대가

항상 메모리 반도체 사이클이 돌아 메모리 호황기가 오면 접하게 되는 뉴스인 것 같습니다. 예상으로는 소송을 당하는 회사가 돈을 많이 벌어야 합의금이든 배상금이든 많이 받게 되므로 그러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찌보면 NPE들은 삼성과 하이닉스가 잘되길 누구보다도 바라는 팬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반도체 업계에서 기술 경쟁력을 키운다는 것은 단순히 더 빠른 칩, 더 작은 회로를 만드는 것만이 아닙니다. 그 기술을 지키고, 남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하는 법적·전략적 역량까지 갖추는 것이 세트로 따라옵니다. R&D에 써야 할 돈과 시간이 소송 방어에 새나가는 구조는, 기술 개발 속도가 곧 경쟁력인 반도체 업계에서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위협입니다.

앞으로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기술 리더십을 유지하려면, 회로 설계만큼이나 특허 전략도 핵심 역량으로 다뤄져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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